때아닌 원조 논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. 나름 웃기기로 유명한 저였지만 못내 개그맨의 꿈을 접고 지금은 평범하지도 못한 삶을 살고 있기에 그래도 한번 떠보고자 때아닌 원조 논란을 좀 불러 일으켜 볼까 합니다.
때는 바야흐로 1989년, 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대한민국이 어느정도 먹고 살만하여 군포라는 시골 촌구석(지금의 군포, 김연아가 사는 곳)에서 막 서울로 상경한 저는 "홍콩 야바리" 라는 별명을 가지고 서울의 한 중학교를 장악하게 됩니다.
군포를 시골 촌구석이라고 했다 하여 섭섭하게 생각 안하시길 바랍니다. 그 당시에는 논, 밭이 대부분이었고 번화가라고 하면 군포 역전앞이 전부였었던 시절이 있습니다. ㅠㅠ
그당시 고 장국영(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.) 이라는 위대하신 홍콩의 배우분께서 큰 인지도로 한국의 모든 광고 시장을 장악할 무렵이였지요. 저는 시골에서 막 상경하여 처음 배정받은 반 친구들 앞에서 그당시 유행하는 고 장국영님의 무심수면(잠못이루는 밤)이란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. 그런데 제 노래의 중국 발음이 워낙 그럴듯 했던지라 반 친구들은 저를 홍콩에서 온 친구로 오해를 하게 되었고(그당시 군포에서 왔다는 것보다 홍콩에서 왔다는 것이 훨씬 영향력이 있었습니다.) 그리하여 홍콩 야바리(가짜를 뜻하는 은어) 병명이 생기게 되었고 저는 나름 빠른 속도로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.
그럭저럭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고 나름 인지도도 쌓아 많은 여인네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였지요. 그때 절 멀리서 따라다니던 한 작은 여학생이 기억나는데.. 그친구는 제가 고등학교 진학하고서도 가끔 절 찾고는 했지요. 그때 따듯하게 안아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긴 합니다.
이래저래 잘 지내고 있던 어느날, 이날도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열심히 교실에서 난리 법석을 피우며 놀고 있었죠.
그 순간 제 눈에 비친 한 친구의 엉덩이를 보게 되었는데요. 그 당시 약간 끼는 바지에 아랫단의 폭이 좁은 바지가 유행이었고 조금만 활발하게 활동하면 똥꼬에 바지가 끼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.
전 친구의 엉덩이를 보니 마치 그 친구의 똥꼬가 바지를 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. 그래서 한마디 던졌죠..
그리고 두해가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, 그 말은 이미 많은 곳으로 퍼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말이 되었습니다. 물론 원조는 바로 "나" 라고 주장도 하여 보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더군요.
아마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이 대부분일껍니다. 뭐, 확율로 따져도 대한민국에 똑같은 상상을 하는 사람이 한 대여섯은 된다고 하니 누구던 그런 말을 먼저 했을수도 있겠죠. 그렇다고 제가 방송매체를 이용해서 퍼트린것도 아니니 이제는 이미 '작자미상'의 유행어가 되어 버렸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만이라도 제가 그 말을 처음으로 퍼트린 유행어 창시자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신다면 진심으로 고맙겠습니다.
인정해 주시는 분들은 손가락 추천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이 제가 원조임을 아실 수 있답니다. ^^
때는 바야흐로 1989년, 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대한민국이 어느정도 먹고 살만하여 군포라는 시골 촌구석(지금의 군포, 김연아가 사는 곳)에서 막 서울로 상경한 저는 "홍콩 야바리" 라는 별명을 가지고 서울의 한 중학교를 장악하게 됩니다.
군포를 시골 촌구석이라고 했다 하여 섭섭하게 생각 안하시길 바랍니다. 그 당시에는 논, 밭이 대부분이었고 번화가라고 하면 군포 역전앞이 전부였었던 시절이 있습니다. ㅠㅠ
그당시 고 장국영(삼가 고인의 명복을빕니다.) 이라는 위대하신 홍콩의 배우분께서 큰 인지도로 한국의 모든 광고 시장을 장악할 무렵이였지요. 저는 시골에서 막 상경하여 처음 배정받은 반 친구들 앞에서 그당시 유행하는 고 장국영님의 무심수면(잠못이루는 밤)이란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. 그런데 제 노래의 중국 발음이 워낙 그럴듯 했던지라 반 친구들은 저를 홍콩에서 온 친구로 오해를 하게 되었고(그당시 군포에서 왔다는 것보다 홍콩에서 왔다는 것이 훨씬 영향력이 있었습니다.) 그리하여 홍콩 야바리(가짜를 뜻하는 은어) 병명이 생기게 되었고 저는 나름 빠른 속도로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.
그럭저럭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고 나름 인지도도 쌓아 많은 여인네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였지요. 그때 절 멀리서 따라다니던 한 작은 여학생이 기억나는데.. 그친구는 제가 고등학교 진학하고서도 가끔 절 찾고는 했지요. 그때 따듯하게 안아주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긴 합니다.
이래저래 잘 지내고 있던 어느날, 이날도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열심히 교실에서 난리 법석을 피우며 놀고 있었죠.
그 순간 제 눈에 비친 한 친구의 엉덩이를 보게 되었는데요. 그 당시 약간 끼는 바지에 아랫단의 폭이 좁은 바지가 유행이었고 조금만 활발하게 활동하면 똥꼬에 바지가 끼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.
전 친구의 엉덩이를 보니 마치 그 친구의 똥꼬가 바지를 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. 그래서 한마디 던졌죠..
야! 니 똥꼬가 바지 먹었어!저의 이 말로 인해 저희반 친구들은 모두 뒤집어 졌고, 그 뒤로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.
그리고 두해가 지나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, 그 말은 이미 많은 곳으로 퍼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말이 되었습니다. 물론 원조는 바로 "나" 라고 주장도 하여 보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더군요.
출처를 찾을 수 없어 표기하지 못하였습니다.
아마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이 대부분일껍니다. 뭐, 확율로 따져도 대한민국에 똑같은 상상을 하는 사람이 한 대여섯은 된다고 하니 누구던 그런 말을 먼저 했을수도 있겠죠. 그렇다고 제가 방송매체를 이용해서 퍼트린것도 아니니 이제는 이미 '작자미상'의 유행어가 되어 버렸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만이라도 제가 그 말을 처음으로 퍼트린 유행어 창시자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신다면 진심으로 고맙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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